일본선교의 기본자세를 생각해본다.
박상도선교사(JEM선교사, 현 서울여대 일어일문학과교수)
칼럼을 써 달라는 제의를 받고 여러 고민을 했다. 무엇을 써야 되는가? 일본선교회의 새로운 홈페이지 개편에 따른 내용이니 그에 걸 맞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과「선교」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어떠한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글을 쓰는 것 보다 나의 체험가운데 깨닫게 된 일본선교에 대한 내용을 진솔하게 적는게 좋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7년 동안 나는 오사카에서 일본선교의 역사의 실제에 대해 나름대로 체험했다. 이런 체험을 기초로 내가 배운 선교의 원리나 실제에 대해서, 그리고 바람직하지 못한 선교현장의 모습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많은 선교사들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 선교사를 통해 생명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는 어떤 공통된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한 지속적인 섬김과 권면이 있는 곳에서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한 영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섬김이 있어도 그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모든 경우로 일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한 영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섬김 없이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선교사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인데 어떻게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은 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개탄스럽게도 이것이 현실인 것 같다. 한 영혼에 대한 진지한 관심 없이 선교사역을 하는 자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인생의 참된 진리를 모르고 허무하게 살다가 지옥 불 못에 떨어질 영혼에 대한 통찰을 갖지 못하고 선교사라고 행사하는 자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자들이 운영하는 교회가 진실 되게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님들의 교회보다 더 규모도 크고 활동도 왕성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드러난 교회의 규모나 사람들의 모임이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온 열매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일본선교에 대한 비전과 환상은 어떻게 갖는가? 교회에서 어느 단체에서 거창하게 표어를 내 걸고 그것을 외친다고 일본선교에 대한 비전과 환상이 자기 것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당사자가 한 영혼에게 헌신적으로 섬기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께서 확신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섬기셨듯이 내가 나에게 주어진 한 영혼을 섬기므로 일본선교에 대한 환상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도 한 영혼에 대한 자세는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시화 운동을 지지 하지 않는 입장에 있다. 예를 들면 오사카나 동경이라는 도시가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가 된다는 취지의 운동이다. 그 의도하는 바는 알겠는데 어떻게 한 영혼에 대한 회개와 변화의 과정 없이 전체 도시가 송두리째 주님의 도시가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실제적으로 오사카나 동경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모든 예수 믿지 않는 영혼들이 변화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러한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주님이 마음을 예비하시고 인도해주시는 한 영혼, 한 영혼이 변화 받고 구원받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영혼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 도시의 모든 영혼들이 복음을 받아 들여 변화되겠는가? 그것을 위해 기도할 수 는 있지만 실제적인 선교의 현실과 복음전도의 원리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본선교에 대한 비전과 환상은 한 영혼에 대한 비전과 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요한 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섬기신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이 어떠한가?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장35절)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 한 영혼의 변화를 통해 전체 사마리아 지역의 복음 전파에 대한 환상을 가지신 장면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주님처럼 이렇게 한 영혼과의 접촉을 통해서 그 지역과 나라에 대한 비전과 환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나의 실제적인 삶 가운데서 체험되어 진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회를 가지고 목회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주변에 모여드는 일본영혼들을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신 영혼이라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접촉하고 섬겼다. 일본 영혼의 특성상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였다. 몇 년이 걸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 고백하였을 때 그때의 희열이란 나 자신만이 비밀스럽게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선교의 기초적이고도 실제적인 원리를 저버리고 선교를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소위 조직과 돈을 위주로 하는 선교이다. 우리가 효과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 조직도 돈도 필요하다. 나는 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조직과 돈이 없이 어떻게 선교를 하겠는가? 이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나는 다만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만일 그 선교사에게서 조직과 돈을 빼고 나면 무엇으로 선교를 할 것인가? 했을 때 선교를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선교사는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믿음을 중심으로 선교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리한 조직과 돈을 중심으로 선교를 해 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라면 조직과 돈이 없더라도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을 전파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자에게 주님은 조직도 사람도 돈도 모든 것을 주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체험한 선교의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많았다.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며 돈을 움직이며 그것이 선교라 여기고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겉에서 볼 때도 조직과 돈을 통해 활발하게 움직여지는 그러한 모습이 매력적일 수도 있다. 생동감 있고 변화가 있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선교활동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일본선교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름도 빛도 없이 한 영혼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으로 충성하고 계시는 분들을 통해 선교역사는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귀한 선교사님들을 알고 있다. 존경스런 분들이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선교에 대해 관심을 처음 갖게 된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선교현장을 모두 동일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이 기뻐하지 못하는 모습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별력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한 영혼의 가치를 가장 귀히 여기고 지속적인 관심과 섬김을 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동적으로 분별이 되게 된다. 선교의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주님을 본 받아 한 영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것을 모르고 물질욕과 명예욕의 노예로 선교현장에서 있는 자들이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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