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사도에서 가르치는 것>
무사도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덕목으로는 의, 인, 견인(堅忍), 예, 명예, 충의, 극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충효는 무사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충성
무사도 가운데서 충성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는 비단 무사도만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일본사회의 도덕으로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충(忠)보다는 효(孝)가 강조되고 있는 점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충(忠)이란 어떤 개인이 국가 또는 주군(主君)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관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 또는 개인과 집단과의 관계와는 틀린 즉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은 천황을 신격화시키고 나라를 대표하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군주와 국가는 대인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개인은 그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태어나는 순간 개인은 국가와 주군에게 크나큰 '온(恩)'을 입고 태어나기 때문에 개인은 충성의 도덕적 의무를 지게 되어 있다.
개인은 군주나 국가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충성을 다할 뿐이며 그것이 댓가를 전재로 한 상호교환적의미가 아니다. 때로는 상벌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충성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 상을 바라거나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 의무를 행한다면 이미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고 일본인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절대적 복종이 있기 때문에 폭군이나 불합리한 상태 아래서도 신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일방적인 관계로서의 충성은 국민으로 하여금 별다른 감시와 관리 없이도 국가에게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일본인의 국민성의 배경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편의점에서 야간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까지도 감독없이 주어진 일을 성실히 이행하는 충실함의 근원도 이런 배경에서 연유한다고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효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효(孝)는 충의 아래에 위치한다. 옛 학자인 '타이라시게모리(平重盛, 1138-79)'는 충과 효가 본디 같은 것이라고 하였지만, 많은 역사적 사례로 볼 때, 일본에서 효가 충과 동등한 입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본의 유명한 담화집인 '하가쿠레(葉隱)'에서는 효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 충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유교문화권에서 변질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 것은 일본의 경우 이미 토대가 잡혀져 있던 '무사문화'에 유교의 지배이념을 도입해 재구성한 탓이다.
*의
의는 다른 말로 의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의 범주는 너무나 광대하다. 어떤 의미로서는 '의무(義務)'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 틀리다. 베네딕트는 "의(義)란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을 말한다"고 서술했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의무에 대한 성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적인 일본인들의 성향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예로서 주군에게 치욕을 입은 가신이 적군과 손잡아 주군을 배신했던 전국시대의 무사들이 있다. 이것은 모두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건이다. 그들은 주군에 대한 의와 자기 명예에 대한 의, 두 가지를 모두 지킨 것이다.
또, 의와 함께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서 '온(恩)'을 들 수 있다. 온이란 '은혜(恩惠)'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것으로서 무의식적인 '의(義)'로서 입는 혜택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일본인들은 이런 온을 꺼린다는 것이다. 그들이 얻은 온은 결국 언젠가는 갚아야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결국 부담이 되어 온을 입은 사람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명예
명예란 자신의 이름에 의무를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는 의무는 크게 '주군을 섬길 의무'와 '이름에 대한 의무', '그 외의 의무' 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이름에 대한 의무는 매우 중요한 의무를 갖게 되며 뜻하지 않게 명예를 손실당하면 매우 수치스러워함과 동시에 이름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복수나 자결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로써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떡장수의 이웃집에 가난한 홀아비 사무라이가 아들을 하나 데리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떡집에서 놀다가 돌아간 후 떡장수는 떡 한 접시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히 사무라이의 아들에게 혐의를 두게 되었고 떡장수는 그에게 떡값을 내라고 하였다. 사무라이는 '아무리 가난할망정 내 자식은 사무라이의 자식이다 남의 가게에서 떡을 훔쳐먹었을 리가 없다'라고 극구 해명하였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떡장수에게 참다못한 사무라이는 마침내 그 자리에서 칼을 빼 아들의 배를 갈라 떡을 먹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인 다음 그 칼로 떡장수를 베어 죽이고는 할복해 자살하였다.
*극기
일본인들은 큰 업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서양인들 처럼 각각의 개성에 의해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자신을 절제해 한계가 있는 육체를 뛰어넘는 정신을 기른다.
만약 시험을 보거나, 검도시합에 나간다거나 하는 소년도 시험이나 시합에서 필요한 훈련뿐만 아니라 그와는 전혀 별개의 개인수련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가다듬는다. 시험 공부중에 혹은 혹독한 훈련 중 그들은 펜이나 목검을 땅에 내려놓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해서 욕구투성이인 육체를 떠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정신의 수련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현재 일본에서도 간간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유치원에 가는 유치원생 등으로 표현되는 일본 교육의 독립심 기르기의 훈련은 이런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사도의 의미
위에서 사려본 바를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결국 "무사도라는 것은 곧 죽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武士道と專ふは死ぬ事と見付たり)"이 것은 바로 무사들의 마음가짐 즉,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을 좀더 일찍 토벌하고 장렬히 죽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무사도와 일본인
근대적 의미에서 일본의 무사도는 메이지유신이나 제국주의의 발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계급은 지방의 무사 계급이었으며 그들은 일본군의 주축이 되었다. 이렇게 융성한 무사도는 2차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대전함 '야마토'와 함께 침몰하였고 무사도가 의미했던 '대화혼(大和魂)'은 그 생명력을 다하였다. 하지만 무사도는 근대적 의미의 무사였던 대일본 제국 육군제의 폐지와 더불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무사도는 일본인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 국민의 성격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요인의 집합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민족의 마음 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무사도에 의해 가르쳐졌던 여러 유산들은 매우 독립적인 것이었고 외세의 어떤 나라도 침범할 수 없는 고귀한 영역이었다.
현대의 일본인에 있어 무사도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쇼와천왕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중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하가쿠레'를 가르쳤지만 종전 후 교육제도의 개편과 더불어 그것 마저 없어졌다. 현재 일본인 대학생에게 직접 인터뷰 해본 결과, "무사도는 구체적인 학문으로 성립될 수 없고 현재 일본에서 가르쳐 지지도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일본의 혼(The soul of Japan)'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보여준 일본의 저력은 일본을 지난 10세기 동안 지배했던 무사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조직에 대한 헌신과 무조건적인 충성, 절제와 검약 등 일본이 보여주었던 많은 미덕들은 과거 일본인의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생각했던 무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무사도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웃나라 일본을 10세기 간 지배한 사무라이. 그리고 그들의 정신이었던 무사도! 그 정신은 지금도 일본의 정신세계와 조직 그리고 사회를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참고문헌》
-일본을 강하게 만든 문화코드 16, 박전열 황달기 외 共著, 나무와 숲, 1999.
-젓가락 사이로 본 일본문화, 노성환, 교보문고, 1999.
-일본학 입문, 최길성, 상명대학교 출판부, 1984.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著 김윤식·오인석 譯, 을유문화사, 1999.
-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1997
|